어제는 모처럼 모교(성균관대학)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학교를 졸업한 해가 1983년이니 벌써 40년이란 시간이 흐른 것을 알고 나도 깜짝 놀랐다.혜화역에서 내려 걸어서 학교를 찾아가는 데 가는 길은 익숙했지만 거리의 풍경은 완전히 바뀌어 낯설기만 했다.약간은 허름하면서도 친숙한 책방, 분식집,다방,주막등 옛 모습은 간데 없고 한집 걸러 까페와 먹거리등 먹자골목으로 변한 모습이 보는 이를 씁쓸하게 했다.학교 풍경도 다르지 않았다.원래 우리 학교는 유학의 전통을 계승한 600년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조선시대 이래 죄고의 명문교육 기관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었고, 그에 따라 학교 분위기도 약간 고풍스러우면서도 전통의 향기가 곳곳에서 묻어나는 것이 자랑이었건만 웬일인지 그 모습은 간 데 없고 현대식 신축건물만 뺵뺵하게 자리하여 이곳이 학교인지 오피스 타운인지 분간이 안 될 지경이었다.그나마 남아 있는, 유생들이 공부하던 明倫堂,공자등 위패를 모신 大成殿,유생들의 휴식처 玉流亭만이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 친구들은 학교 졸업 후 公職으로, 大學校授로,公/私企業으로 진출하여 활약했으나 이제는 1차 직장에서 은퇴를 한 경우가 많고 아직 현역에 있더라도 곧 은퇴를 앞둔 시점이다.모교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는 이 교수방에 모여 귀한 차와 고급커피를 나눠 마시며 가벼운 담소를 나누며 친구들이 모이기를 기다렸다,이교수는 정년을 2년 앞둔 원로교수(?)라 예우차원으로 그런건지 연구실의 뷰가 한마디로 끝내주는 곳이었다 멀리 앞으로는 남산타워가 보이고 발아래로는 비원의 울창한 숲이 신록을 뽐내고 있는 모습이 싱그럽기 그지 없었다.집에서 손주 둘을 잠깐 돌봐주고 있는 데 이녀석들이 워낙 개구쟁이라 목욕 하나 시킬려도 보통 힘든게 아니라며 푸념겸 은근 자랑을 하는 데 한 편 부러우면서도 저출산시대에 아들이 애국자라고 치켜세우니 싫지 않은 표정이다.재철이는 아들이 모교 로스쿨을 다니는 데 학교를 무려 3곳이나 옮겨 다닌다며 자식자랑을 하니 모두가 나이든 탓이리라 이해하기로 했다.
조금 늦게 도착하는 친구들이 몇몇 있어서 저녁 6시경 식사는 대학로에 있는 進雅春이란 중식당에서 했다.여러가지 요리를 시켜서 가벼운 음주와 함께 화기애애한 이야기 꽃을 피우며 식사를 했다 식후 대화의 주제는 주로 나이가 나이인지라 건강에 관한 것이 주를 이뤘다.매일 10km를 걷는다는 재구형은 젊었을 떄부터 건강에 자신이 없어서 지금도 매일 걷기를 생활화하고 있노라며 버스 3~4 정거장정도는 가볍게 걸어다닌다고 했다.두삼이는 공무원으로 퇴직한 이후 집 까까운 서울숲으로 매일 출근하며 건강을 챙기고,퇴직을 하고 보니 무엇보다 삼시 세끼 잘 챙겨먹고 소소한 일상을 잘 보내는 것이 중요하단 것을 깨우쳤다고 주장했다.천안에서 법무사로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일수는 풍채가 남다르게 좋고 얼굴색도 빛이 날 정도라 건강비결을 물어보니 매일 아침 아내가 챙겨주는 계란 2개와 두유 한컵,그리고 빠지지 않고 한다는 국민체조(그것도 두번씩)덕이라며 진구들에게도 강권했다.산을 좋아하는 순혁이는 네팔 안나푸르나 트래킹 도중 고산병을 만나서 고생한 이야기를 하며 고산에 갈떄는 특히 조심하라고 당부했다.동훈이는 대학교 3학년때 종강파티할때 겪은 프로판까스 폭발사고를 상기하며 그 떄 여러친구가 화상을 입고 고생한 이야기며 주인아주머니가 식대의 10배를 치료비로 물어준 이야기로 모두가 놀라기도 했다 식사후 나오는 길에 그날의 현장을 가보자며 현장답사(?)를 추진했지만 신축건물이 들어선 자리만 있을뿐 자취는 사라지고 없어서 이쯤일 것이라 짐작만 하고 쓸쓸히 발길을 돌렸다.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라는 노래가사가 있지만 한 때 꽃다운 청년들의 머리에는 흰 이슬이 눈처럼 내려 앉았고 눈가에는 하나 둘 잔주름이 잡혀도 푸른 청운의 꿈을 이루고자 분투했던 그 시절 청년들의 마음만은 아직도 청춘
같았다.어느 친구가 모임 후기에서 앞으로 우리가 얼마나 만날 수 있을까? 몇번이나 만날까하고 아쉬움을 전했지만 가는 세월 잡을 수는 없어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나이야 가라~나이가 대수냐 라는 노래가사를 되뇌이며 다음 모임은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자고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으고 즐거운 마음으로 후일을 기약하며 헤어졌다.40년만의 유쾌한 모교방문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