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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도시락

손부장 2026. 2. 27. 19:24

  겨울이라면 아직 어둑한 시간 새벽 630분 혼자 일어나서 계란을 삶는다.팔팔 끓는 물에 계란을 넣고 10~12분 삶으면 完熟, 9~10분 삶으면 半熟이 된다.2018331일부로 직장생활을 끝내고 은퇴자의 삶으로 인생 후반전에 돌입한 후에도 몸속의 생체시계는 출근과 무관하게 6시 반 기상을 알람소리처럼 울려주니 좋든 싫든 조기 기상의 습관은 변함이 없다. 퇴직할 때 혼자 다짐한 것이 있다 인생 전반전은 利己的이고 計算的으로 살았으니 후반전은 利他的이고 犧牲的으로 살아보자고 다짐했었다. 우선 가까이 있는 가족부터 돌보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딱히 해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출근하는 두 딸들의 도시락을 싸주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도시락이라 하면 학생 때 어머니가 싸 주시던 밥하고 반찬을 생각하겠지만 그러려면 반찬이 문제라, 쉽게 구할 수 있고 간단히 준비할 수 있는 재료로 이름 하여 건강도시락(?)을 싸게 되었다. 건강도시락의 메뉴는 우선 삶은 달걀 두 개,고구마(또는 감자)한개,야채로는 파프리카1/2,오이1/2,당근1/2, 과일로는 사과 반쪽, 바나나 한 개를 썰어서 나무도시락에 정갈하게 담아 주었다. 밥과 반찬은 아니지만 영양의 균형도 맞고 소화도 잘되는 야채로 비타민도 보충하니 꽤 훌륭한 건강 도시락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도시락 싸기는 3년간 계속 되었다.도시락을 가져가서 동료들과 점심을 먹을 때 듣는 말은 누가 도시락을 싸주느냐? 묻기에 아빠가 쌌다고 하니 너도나도 대단하다고 칭찬을 했다고 들었다. 나는 출근대신 도시락을 쌌을 뿐이고 딸들은 밥 대신 건강도시락으로 점심 한 끼를 해결하니 서로가 윈윈 하는 좋은 선택이었다. 별거 아닌데 누구나 할 수 있는데 라고 혼자 생각했다.

 

  어제 226()에 큰 아이가 빵집을 오픈했다. 건강도시락 먹으며 다녔던 회사를 4년 만에 퇴사하고 빵 공부를 더 하려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것이 20229월이다. 처음 배운 불어를 1년간 공부하고 프랑스로 건너가서 어학과정을 1년 더 수료하고 국립제빵학교(INBP)에서 제과와 제빵을 공부하고 2510월에 귀국했다. 귀국 후 빵집을 차리겠다고 그 추운 날씨를 아랑곳하지 않고 강동구 일대를 이 잡듯이 돌아다니며 자리를 물색했다. 드디어 둔촌동역 부근에 좋은 자리가 나서 계약을 하고 261~2월 두달간 개업을 준비하여 드디어 오픈을 했다.

 

  오늘 빵 가계에 점심으로 오랜만에 건강 도시락을 배달해 주었다. 새로 오픈한 빵집이라 일도 익숙지 않고 손님 응대도 서툴러 밥 먹을 시간이 없다는 소리를 들으니 맘이 아팠다. 그렇다면 내가 점심을 만들어 주리라 생각하고 오랜만에 건강도시락을 만들어서 매장으로 배달을 했다. 매장에 도착하니 집사람 전 직장 동료 분들이 와서 빵을 구입하고 계셨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손님이 가신 뒤에 주방에서 도시락을 펼쳐놓고 늦은 점심을 먹게 되었다. 집 사람도 희정이도 좋다고 계란을 까서 먹으니 내 맘이 흐뭇했다.

 

  처음으로 가계를 열다보니 모든 것이 서툴고 낯설지만 그래도 빵만은 큰 아이가 자신있어 하고 그동안 경력이 쌓여서 걱정이 없었지만 판매가 잘 될지 고객응대는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어쨌든 무사히 오픈 날을 지났고 이제 시간이 가면 모든 것이 자리를 잡아 갈테고 식사문제만 잘 해결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밥도 못 먹고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뭔가 먹거리를 준비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리나케 계란을 삶고, 농협으로 차를 몰고 가서 딸기와 방울토마토를 사왔다. 플라스틱 용기에 계란,바나나,딸기,방울토마토,고구마를 차곡차곡 담으니 그럴듯한 도시락이 완성되었다,8년전 아침 도시락을 정성스레 만들던 생각이 나며 추억의 한 장면이 불현듯 떠올랐다. 퇴직 후 가족생각에 싸던 도시락 이제는 빵집사장으로 변신한 큰딸의 점심 한 끼로 발전했다. 앞으로도 계속해볼까 생각 중이다.오늘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발걸음이 가볍고 왠지 가장 노릇을  제대로 한 것 같아서 흐뭇했다. 아빠의 도시락이라 쓰고 사랑이라 읽는다.